가을 우체국
의외였다.
조연이 탄탄한 것이 의외였고, 가수 보아가 소리소문없이 찍은 영화인 것이 의외였다.
단독 주연.
120분을 넘는 러닝타임.
영화는 굉장히 느린 호흡으로 아쉬움을 준다.
화면으로, 풍경으로 감성을 움직이고 따듯하게, 혹은 아련하게, 혹은 아름답게 보여주지 못한다.
대사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마치 단 한 번도 소리내 읽어 보지 않고 글을 쓴 것 처럼.
배우 임현식의 캐릭터가 극에 그처럼 녹아들지 않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배우 오광록의 대사는 하나같이 족히 이십 년은 더 예전의 시적 감수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집중하기란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아역과의 씬에서는 도저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개중 배우 송옥숙의 역이 가장 편안했다.
영화의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다.
평범하지 않은, 자연과 감수성을 키워준 아버지가 이른 나이에 병으로 죽고, 그 병을 되물림한 나이 서른이 되면 죽음을 앞둔 시한부 여자.
그리고 그 여자를 십 년 이상 바라보는 남자.
둘의 관계는 촌수로 십삼촌의 인척. 족보상으로는 고모와 조카.
심지어 둘은 한 때 나마 서로 사랑했다.
납득되지 못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음에도 영화는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최소한 관객이 이러한 이유가 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합리화 할 거리라도 줘야 하는데 반해, 글을 그대로 옮기기만 한 것 같은 어색함이 너무 크다.
권보아는 예뻤으나, 그 뿐이었다.
예쁘게 웃는 것이 어색했다.
영화의 시작부터 그래서 단추를 잘못 끼운 옷을 보는 것 같았고, 보는 내내 아쉬움이 컸다.
대사와 대사 사이, 씬과 씬 사이에 무의미한 시간이 너무 많았다. 조금 더 타이트할 수 있었다면. 십 분만 줄였다면 보다 아름다웠을 영화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는 아름다움으로 승부해야 함에도 충분한 재료를 아름답게 가꾸지 못했으니.
예뻤으나 그 뿐이었고 너무나도 익숙한 처량함이었다.
헌정영화라고 해야 할까.
배우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학생으로써의 졸업과제 같은 느낌이었다.
이 영화는 권보아의 송곳니, 미루나무씨를 찾는 독백, 울음. 셋이 전부다.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이후 나온 연기라 적잖은 기대를 했다.
종반부에 다시 한 번 기대를 하게 만들기는 했으나, 영화로써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팬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