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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라는 드라마가 반복되는 애정행각으로만 점철되어 손예진과 정해인이라는 두 배우 외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드라마가 되어버렸듯, 후속작인 미스 함무라비는 처음 본 순간 아주 전형적이고 무난한 법정 판사물이라 생각했다.

각 캐릭터는 만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매우 극단적이고 단순한 캐릭터로 그려졌으며, 그렇기에 별 생각 하지 않고 머리를 텅 비운 채 인스턴트를 즐기듯 볼 수 있어 편한 맛에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이는 내 오산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극본이 누구의 것인지 찾아봤더니 현직 판사라고.

자극적인 경험담을 편집한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어 방송에 내는 것이 가능한 것을 보며 과연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시장바닥에서 의도된 연출로 경험하고 납득시킬만한 예를 든다는 것까지는 유머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성폭력 피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강남역 살인사건을 들먹이는 꼴이 프라임 타임 드라마로 방송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페미나치의 프레임 짜기가 아닌가.

 

이 드라마의 레파토리는 쭉 비슷할 것으로 여겨진다.

배우 고아라의 배역은 남녀 차별에 매몰되었다 하나 그 캐릭터의 배경에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럴 수 있다 이해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미투와 결부시킨 짜고 치는 재판에 강남역 살인사건, 법은 여성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클립 제목, 여자가 사는 세상 등의 문장 들은 이 드라마의 극단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는 그러면서도 섹시함이라는 키워드를 놓지 않는다.

이는 이슈몰이를 통해 시청률만 뽑아먹겠다는 수단이고, 전형적인 경제논리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법정 드라마와 맞부딪치면 안 될 수밖에.

 

'이렇게 생각 할 수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은 개인의 생각이다.

그 개인의 생각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송출되게 되면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 또한 보장해야 한다.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는 이를 대립하는 다른 캐릭터 등으로 이해하고 납득할 여지를 보장해 줘야만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렇지 못하기에 일방적인 성폭력 메세지를 담고 있을 뿐이다.

 

돈 되는 일에 편승하겠다는 것을 말릴 권한은 없지만 비난할 입은 있으니 참으로 한심해서 더는 보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종편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가 충분히 약진했다 생각했고, 성공한 기존의 탄탄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영상미를 살린 드라마들을 너무나도 많이 기억하기에 오히려 공중파보다 호감어린 시선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제작, 편성한 이유를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다.

 

JTBC라는 방속국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새삼 한국의 페미니즘이란 것이 얼마나 부가가치 창출에 높은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악의적이고 자극적인 편집으로도 사람들은 연출부를 욕하고 성토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악의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의 출발점이 편집이 아닌, 제작이 아닌, 기획단계에서 들어간 드라마다.

자극적, 또, 더 자극적.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이미지가 혐오스러움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이야기가 어디까지 가는 지는 이 드라마의 정체성인 논란유발로 인한 워딩을 살펴보면 그 뿐일 것이니, 드라마를 볼 가치는 없다.

 

기분 좋게 편하게 보려 했던 드라마가 아주 시궁창같은 더러움만을 전해준 안타까운 밤이다.

충분히 더 흥행할 수 있는 시기와 출연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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